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미술관 속 옛 거장들의 초상화나 자화상은 엄숙함 그 자체다. 화려한 가발을 쓰고, 꼿꼿한 자세로 정면을 응시하며 자신의 권위와 지성을 뽐내는 것이 당대의 상식이었다.
하지만 여기, 프랑스 혁명기의 한복판에서 대중을 향해 대놓고 "아함~" 하고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켜는 파격적인 자화상이 있다. 바로 프랑스의 궁정 화가 조제프 뒤크뢰(Joseph Ducreux)가 그린 《자화상, 하품하는 사람(Self-Portrait, Yawning)》이다.
오늘날 '인터넷 밈(Meme)'으로도 재발굴되며 시대를 초월한 사랑을 받고 있는 이 유쾌한 그림 뒤에는 어떤 미술사적 도전이 숨겨져 있을까?

1. 마리 앙투아네트의 총애를 받던 궁정 화가의 반전
이처럼 장난기 가득한 그림을 그린 조제프 뒤크뢰는 사실 당대 최고 엘리트 코스를 밟은 프랑스 왕실의 공식 화가였다. 그는 오스트리아에 머물던 시절, 프랑스 왕가로 시집오기 전의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를 그려 프랑스 루이 16세에게 보낸 인물로 유명하다. 이 초상화 덕분에 능력을 인정받아 왕비의 총애를 받으며 탄탄대로를 달렸다.
그랬던 그가 격식과 예의를 중시하는 궁정 미술의 틀을 깨부수고, 인간의 가장 본능적이고 지극히 사적인 순간을 화면 가득 채워 넣은 자화상을 발표한 것이다.
2. 관상학(Physiognomy)에 매료된 화가의 대담한 실험
뒤크뢰가 이런 파격적인 자화상을 그린 것은 단순히 장난을 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18세기 후반 유럽 학계와 예술계를 뒤흔든 '관상학(Physiognomy)'에 대한 깊은 관심에서 비롯된 정교한 예술적 실험이었다.
당시 스위스의 학자 요한 카스파르 라바터는 "인간의 얼굴 형태와 미세한 표정 변화를 통해 그 사람의 성격, 감정, 내면의 영혼을 읽어낼 수 있다"는 관상학 이론을 발표해 큰 인기를 끌었다.
뒤크뢰는 이 이론에 깊이 매료되었고, 인간의 가식 없는 진짜 감정이 분출되는 순간을 포착하고자 했다. 그 실험의 가장 완벽한 마루타(피사체)가 바로 '화가 자신'이었던 것이다. 그는 하품하는 순간 외에도 손가락으로 관객을 비웃듯 가리키는 모습, 침묵을 요구하며 손가락을 입에 대는 모습 등 다양한 표정 연구 자화상 시리즈를 남겼다.
3. 격식을 파괴한 완벽한 사실주의적 묘사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화가의 기술적 완성도에 감탄하게 된다. 하품을 하느라 잔뜩 찡그려진 눈가와 미간의 주름, 콧망울의 움직임, 그리고 크게 벌어진 입안의 구조까지 해부학적으로 완벽하게 포착해 냈다.
또한 기지개를 켜며 앞으로 뻗은 오른팔의 역동적인 각도는 2차원 캔버스를 뚫고 나오는 듯한 입체감을 선사한다. 당시 신고전주의 미술이 추구하던 '이상적인 미(美)'와 정반대 노선을 걸으며,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을 가감 없이 드러낸 극단적 사실주의의 선구적 예시라고 볼 수 있다.
4. 2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인터넷 밈(Meme)이 되다
뒤크뢰의 자화상 시리즈는 놀랍게도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어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의 독특한 표정과 손짓이 현대의 힙합 래퍼나 재치 있는 감정 표현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해외 온라인 커뮤니티(Reddit 등)를 중심으로 수많은 '밈(Meme)'을 양산해 낸 것이다.
- "아침 8시 수업을 들으러 갈 때 내 표정"
- "월요일 출근길의 직장인"
등의 제목과 함께 뒤크뢰의 그림은 현대인들의 공감을 자아내는 최고의 소통 도구가 되었다. 백인 가발을 쓴 18세기 화가가 21세기 네티즌들과 코드가 통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 작품이 가진 시대를 초월한 생명력을 증명한다.
5. 예술의 문턱을 낮춘 유쾌한 걸작
조제프 뒤크뢰의 《자화상, 하품하는 사람》은 고결하고 우아한 것만을 '예술'이라 부르던 시대에, 인간의 가장 보편적이고 친근한 모습을 통해 "이것도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외친 통쾌한 반란이다.
우리가 이 그림을 보며 무의식적으로 따라 하품을 하거나 미소를 짓게 되는 것처럼, 뒤크뢰는 박제된 박물관 속 인물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 곁에서 살아 숨 쉬며 장난을 건네는 예술가로 기억되고 있다. 본질을 잃지 않으면서도 대중에게 유쾌한 위트를 던지는 법을 알았던, 진정한 시대를 앞서간 천재의 명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