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미술사에서 가장 매혹적이면서도 처연한 죽음을 그려낸 작품을 꼽으라면 단연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의 《오필리아(Ophelia)》일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햄릿》의 한 장면을 시각화한 이 그림은 발표된 지 170년이 지난 지금도 런던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에서 가장 많은 관람객의 발길을 사로잡는 마스터피스로 평가받는다.
화려한 자연의 생명력과 한 인간의 비극적인 죽음이 기묘하게 공존하는 이 작품 뒤에는, 화가의 광기 어린 집착과 모델의 혹독한 희생이 숨겨져 있다.
1. 셰익스피어의 문학, 화폭 위에서 살아나다
그림의 주인공 오필리아는 햄릿의 연인이었으나, 햄릿이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하자 그 충격으로 미쳐버린 비운의 인물이다. 그녀는 이성을 잃은 채 강가에서 버드나무 가지에 꽃을 걸려다 물에 빠지게 된다.
밀레이는 오필리아가 서서히 물속으로 가라앉으며 마지막 노래를 부르는 그 찰나의 순간을 포착했다. 흐트러진 드레스와 물 위에 흩뿌려진 꽃들, 그리고 하늘을 향해 열려 있는 그녀의 손과 초점 없는 눈망울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인간의 허망함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2. '라파엘전파'의 철학이 낳은 극단적 사실주의
이 작품이 이토록 생생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밀레이가 속했던 예술 유파인 ‘라파엘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의 독특한 창작 방식 때문이다. 이들은 르네상스 시대의 전형적인 미화에서 벗어나 "자연에 절대적으로 충실하자"는 모토를 가졌다.
밀레이는 강가의 생태계를 완벽하게 재현하기 위해 영국 서리(Surrey) 지역의 호그스밀 강가에 이젤을 펴고 5개월 동안 매일 11시간씩 그림을 그렸다. 그는 백조의 공격을 받고, 살인적인 추위와 파리 떼에 시달리면서도 들판의 풀 한 포기, 이끼 한 조각까지 현미경으로 보듯 정교하게 묘사했다. 이러한 집착 덕분에 그림 속 식물들은 현대 식물학자들이 종류를 정확히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완벽도를 자랑한다.
3. 그림에 숨겨진 꽃말의 비밀
화면을 가득 채운 꽃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바탕으로 철저하게 계산된 상징물이다.
- 양귀비 (붉은 꽃): 오필리아의 목 근처에 있는 양귀비는 '잠'과 '죽음'을 상징한다.
- 제비꽃 (목걸이 형태): 그녀의 목에 걸린 제비꽃은 '신의'와 '순결', 그리고 '조장(일찍 죽음)'을 의미한다.
- 버드나무와 쐐기풀: 오필리아의 머리 위에 드리워진 버드나무는 '버림받은 사랑'을, 쐐기풀은 '고통'을 뜻한다.
- 물망초: 강가에 조그맣게 피어난 보라색 물망초는 '나를 잊지 마세요'라는 슬픈 메시지를 던진다.
4. 모델 엘리자베스 시달의 혹독한 희생과 비하인드
자연 배경을 완성한 밀레이는 런던의 작업실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인물 묘사에 착수했다. 오필리아의 모델은 당시 라파엘전파 화가들의 뮤즈였던 19세의 엘리자베스 시달(Elizabeth Siddal)이었다.
물에 뜬 인물의 역동성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밀레이는 시달을 물이 가득 찬 욕조 속에 눕혀놓고 작업을 진행했다. 문제는 혹독한 겨울이었다. 욕조 아래에 기름램프를 켜서 물을 데웠으나, 작업에 몰두한 밀레이는 불이 꺼진 줄도 몰랐다.
시달은 화가의 집중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얼음장처럼 차가워진 물속에서 몇 시간 동안 군소리 없이 버텼다. 결국 그녀는 폐렴에 걸려 사경을 헤맸고, 분노한 그녀의 아버지가 밀레이에게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협박한 끝에 치료비를 받아내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5. 시대를 초월한 불멸의 걸작
1852년 로열 아카데미 전시에 처음 공개되었을 때, 이 작품은 "시체를 진흙탕에 처박아 놓았다"는 평론가들의 혹평을 받기도 했다. 죽음을 지나치게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대중들은 곧 자연의 압도적인 아름다움과 비극적 서사가 주는 묘한 대조에 매료되었다.
존 에버렛 밀레이의 《오필리아》는 단순히 문학의 한 장면을 재현한 것을 넘어, 인간의 가장 취약하고 슬픈 순간을 영원한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명작이다. 비극적 죽음조차 자연의 일부로 회귀하는 듯한 신비로운 연출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깊은 미적 전율과 위로를 건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