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신화와 역사 속에서 '외눈박이 괴물' 키클롭스는 늘 공포와 파괴의 상징이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등장하는 키클롭스는 동굴에 갇힌 인간들을 잔인하게 잡아먹는 포악한 식인 괴물로 묘사된다. 미술사에서도 수많은 거장들이 이 괴물을 흉측하고 위협적인 존재로만 그려왔다.
하지만 20세기 초, 프랑스의 상징주의 거장 오딜롱 르동(Odilon Redon)의 붓끝에서 키클롭스는 전혀 다른 존재로 다시 태어났다.
그의 대표작 《키클롭스(The Cyclops)》는 괴물의 거대하고 기괴한 외면 뒤에 숨겨진, 한없이 외롭고 순정한 내면을 비추는 비극적인 로맨스의 명작이다.

1. 공포의 대상을 위로의 존재로 바꾸다
그림의 구도는 무척이나 기묘하고 환상적이다. 화려하고 원색적인 꽃들이 만발한 이국적인 언덕 위, 아름다운 바다의 요정 갈라테아(Galatea)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평화롭게 잠들어 있다.
그리고 그 뒤로, 거대한 바위산 너머에서 외눈박이 괴물 키클롭스(그중에서도 '폴리페모스')가 고개를 슬며시 내밀고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다.
주목해야 할 점은 괴물의 ‘눈빛’이다. 사람을 해치려는 잔인함이나 음음한 욕망은 찾아볼 수 없다. 둥글고 커다란 외눈에는 잠든 요정을 깨우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움, 다가설 수 없는 자신의 운명에 대한 슬픔, 그리고 한 사람을 향한 애틋한 연민이 가득 고여 있다. 르동은 신화 속 공포의 대상을 '짝사랑에 가슴 앓이 하는 외로운 관찰자'로 완벽하게 재해석해 냈다.
2. '흑백의 화가'가 도달한 화려한 상징주의의 정점
오딜롱 르동은 커리어의 전반기 동안 오직 목탄화와 판화만을 고집하며 검은색의 세계를 탐구했던 화가였다. 그는 인간의 무의식, 악몽, 기괴한 생명체들을 주로 그리며 "내면의 어둠을 가장 잘 표현하는 화가"로 불렸다.
그러나 50세가 넘어서면서 그는 극적인 변화를 맞이한다. 파스텔과 유화를 도입하며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고 몽환적인 색채의 마술사로 변신한 것이다.
1914년에 완성된 《키클롭스》는 이러한 르동의 후기 화풍이 집대화된 마스터피스다. 화면을 가득 채운 노랑, 빨강, 파랑의 다채로운 색감은 현실의 풍경이라기보다는 마치 꿈속이나 무의식의 세계를 걷는 듯한 신비로운 착시를 불러일으킨다.
3. 다가갈 수 없는 존재들의 서글픈 사랑
그림 속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신화에서, 키클롭스는 갈라테아를 격렬하게 사랑하지만 외모와 종족의 한계 때문에 끝내 거절당한다. 질투에 눈이 먼 괴물은 결국 갈라테아가 사랑하던 인간 청년 아키스를 바위로 쳐 죽이는 비극을 낳는다.
하지만 르동은 그 잔인한 결말 대신, '비극이 시작되기 전의 고요한 순간'을 선택했다. 괴물은 자신이 다가가면 요정이 소스라치게 놀라 달아나거나 비명을 지를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저 바위 뒤에 숨어 숨을 죽인 채,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것이다.
이러한 연출은 현대인들이 겪는 타인과의 소통의 한계, 아무리 갈망해도 완벽하게 닿을 수 없는 내면적 고독이라는 보편적인 감정과 맞닿아 깊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4. 눈(Eye), 영혼을 비추는 거대한 창문
르동의 예술 세계에서 '눈'은 아주 중요한 상징적 오브제다. 그의 다른 작품에서도 하늘을 떠다니는 거대한 눈동자나 식물에 매달린 눈이 자주 등장한다.
르동에게 눈은 단순히 사물을 보는 기관이 아니라, 인간의 이성을 넘어선 무의식과 영혼을 비추는 통로였다.
《키클롭스》에 등장하는 괴물의 기형적인 외눈 역시 마찬가지다. 신체적 기형은 세상으로부터 소외당한 약자의 모습을 대변하는 동시에, 오직 한 사람만을 향해 모든 영혼의 시선을 집중하는 순수한 몰입을 상징한다. 눈을 통해 괴물의 추악한 외형은 순식간에 휘발되고, 관람객은 오롯이 그 안에 담긴 투명한 영혼의 슬픔을 마주하게 된다.
5. 기사를 맺으며
오딜롱 르동의 《키클롭스》는 우리가 가진 편견의 벽을 무너뜨리는 힘을 지닌 그림이다. 외형이 흉측하다는 이유로 괴물이라 박제해 버린 존재에게서 가장 인간적이고 아름다운 순정을 길어 올린 화가의 시선은, 타인을 쉽게 규정하고 판단하는 현대 사회에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만발한 꽃들의 환상적인 색채 속에 숨겨진 외눈박이 괴물의 고독한 눈망울. 오늘 밤, 세상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해 스스로를 '괴물'처럼 외롭다고 느끼는 이가 있다면, 르동의 이 따뜻하고 유연한 캔버스 앞에서 가만히 위로를 받아보는 것은 어떨까.